나흘 앞두고 엎어진 ‘홍보대사’의 축하공연
7월 16일.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평온한 주말 오후였다. 트위터가 갑자기 요란해졌다. 나흘 뒤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홍보대사’ 자격으로 KBS 특별방송에 출연 예정이던 JYJ의 출연이 급작스럽게 취소되었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곧장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사실이었다.
“JYJ가 제주 7대 경관의 홍보대사 자격으로 20일 특별방송 출연을 앞두고 있었으나 오늘 출연취소 통보를 받았습니다. 당사는 갑작스런 출연취소에 대한 정확한 사유를 주최 측에 요청한 상태입니다. 기다려주신 팬들께 급작스러운 취소를 공지 드린 점 양해 부탁드리며, 내용 확인 후 빠른 시일 안에 추가 공지 올려드리겠습니다.”
‘KBS의 악몽’이 되풀이되는 순간이었다. 이 소식은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JYJ 팬은 물론 일반인들도 깜짝 놀라며 적잖은 논란을 야기했다.
세계 7대 자연 경관은 스위스의 ‘뉴세븐원더스’라는 재단이 주관하는 캠페인. 2007년부터 전 세계 440곳의 후보지를 시작으로 최종 후보 28곳이 결정되었고, 2011년 11월 11일 최종 7곳이 결정되는 투표였다.
JYJ의 제주 7대 경관 선정 홍보대사 위촉은 앞선 4월 중순 제주도청 측의 요청으로 이루어지게 됐다. 공식적으로 메일을 통해 홍보대사 역할과 JYJ를 선정하는 이유에 대한 내용을 전달 받은 것은 4월 26일이었다.
하지만 홍보대사 위촉의 경우 위촉식과 함께 홍보대사 선정에 대한 공식적인 보도자료가 배포된 시점부터 홍보를 진행하는 것이 관례였고, 당시 JYJ가 월드투어 중이었기 때문에 위촉식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처음에는 JYJ 측에서 이 제안을 정중히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제주도청 측에서 “7월 특별방송을 준비하고 있으니, 그때 위촉식을 진행할 것”이라며 “우선 시급한 홍보활동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해 홍보대사직을 수락하게 된 것이었다. 이후 5월 4일 제주도청에서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홍보대사 위촉 사실을 알리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월드투어 콘서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JYJ는 한국의 아티스트로서 국가 브랜드 향상과 제주 7대 경관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에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홍보활동에 나섰다.
JYJ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한 로고송을 부르고, 자체 동영상을 제작해 국내외 팬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등 단순한 위촉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펼쳤다. JYJ는 이 영상에서 자신들이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대한민국 브랜드의 세계화를 위해 제주에 투표할 것을 권유했다. 이 영상은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에 올려진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수 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온라인상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JYJ의 활동을 통해 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 캠페인이 많은 도움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제주도는 그동안 경쟁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국제적 인지도로 인해 부진한 외국인 투표 증가가 절실했던 상황이었다. 이런 시점에 JYJ의 홍보대사 합류는 외국인 투표 증가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이들의 활동으로 제주도는 국내외에서 빠른 인지도 상승효과를 구가했다. JYJ의 권유로 국내외에서 상당수의 팬들이 제주에 투표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이 발생했다. 누구나 투표에 참여할 수 있고, 인터넷이나 전화로 무제한 중복 투표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효과는 더욱 극대화되었다. 이를 확인한 제주도청 측은 5월 들어 “JYJ 덕분에 전국적으로 큰 홍보가 되고 있다.”는 감사의 내용이 담긴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을 나흘 앞두고 JYJ의 출연이 전격 취소됐다. 게다가 이들을 대신해 무대에 오르게 된 가수가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소녀시대와 f(x)였다. 논란은 더욱 가열되었다. 후폭풍도 거셌다. 이 사태로 또 다시 공영방송사에 대한 실망감을 안게 된 팬들은 상심하며 KBS의 결정에 반발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방송 나들이에 나서는 JYJ의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설렘과 기대감을 갖고 있었을 팬들을 우습게 여기는 처사였다.
팬들은 “JYJ의 인기를 이용해 7대 경관 선정 투표를 하도록 유도해 놓고 막상 공연의 출연은 취소해 버렸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일부에서는 KBS 시청거부 운동,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 등을 거론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 방송 국제적 비웃음거리 전락 시킨 한국방송공사
KBS의 이러한 ‘황당한’ 결정이 가져온 파장 중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한국 방송 전체가 한순간에 국제적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 무엇보다 해외 팬들의 한국 방송에 대한 배신감과 거부감이 상당했다. JYJ의 갑작스런 출연 취소통보 소식을 전해들은 일본을 비롯한 수많은 해외 팬들은 트위터와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KBS를 지탄했다.
한 트위터러는 “나는 아직까지 제주도도, 한국도 한 번 가보지 못했지만, 오로지 JYJ 때문에 제주도를 투표했다. 그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나라를 응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또 다른 트위터 유저는 “KBS는 이번 사건으로 그들 자신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국민적 자부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JYJ를 생각하며 제주도를 위해 투표를 한 수십 만 명의 해외 팬들은 지금 사기당한 느낌이다. 이번 KBS의 행동 때문에 제주도에 투표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무엇보다 국제 한류 소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진행상황을 지켜보며 받았을 상실감과 한국에 대한 반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이번 사태로 인해 자연경관 홍보는커녕 국제적 망신살이 뻗치게 되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KBS는 이런 파장이 충분히 예상 가능했음에도, 왜 JYJ의 출연 취소를 결정했을까? 이에 대해 KBS는 별도의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몇몇 경로를 통해 정황이 포착되었을 뿐이다.
씨제스는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JYJ가 출연할 경우 방송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정확한 사유는 없는 결과적인 통보만을 받았다.”고 밝혀 방송사 내부의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KBS 제주방송총국의 한 관계자는 이날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방송 출연을 이전부터 추진 중이었던 소녀시대와 f(x)가 방송 준비 단계 막판에 출연이 가능하게 되어 프로그램 전체를 봤을 때, 소녀시대와 F(x)의 출연이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JYJ 대신 이들을 섭외하게 되었다.”고 말해 논란을 부추겼다.
그러나 KBS 관계자의 이러한 전언에도 방송가에 나돌던 ‘배후설’ ‘외압설’ 등은 점점 더 힘을 얻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JYJ가 출연하지 못하거나 방송이 무산된 프로그램의 뒤에는 항상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이 출연한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이것이 과연 기막힌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거대 연예기획사의 횡포인지, 그것도 아니면 연예기획사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방송사의 알아서 기기인지, 혹은 이 둘의 담합이나 결탁인지 상황을 지켜보는 대중은 혼란스러워졌다.
JYJ의 출연 취소 논란이 갖는 문제점은 우선 이 방송은 일반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제주 7대 경관 선정을 기원하는 특별방송이었다는 점이다. JYJ는 공식적인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홍보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프로그램 출연을 위해 비행기 티켓예매는 물론, 출연 중이던 드라마 스케줄도 조정하는 등 열의를 보였다. 그런데 이러한 일방적 결정에 대한 책임 있는 해명도, 납득할 만한 배경설명도 없이 갑자기 출연을 통보하는 도를 넘어서는 무례를 범했다.
KBS는 적정선을 넘어선 이러한 횡포에도 사과표명을 하지 않아 논란이 더욱 커졌다.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마저 외면하고 회피하는 KBS의 행태에서 대중은 공영방송의 어떠한 공신력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씨제스는 이후 “그동안 JYJ의 위촉식에 대한 특별방송을 약속하고 사전 홍보활동에 이용한 뒤 위촉식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아티스트를 기만한 이번 사건을 묵과하지 않겠다.”면서 공정위에서 주최 측을 신고하는 등 법적 절차를 진행했다.
‘소녀시대 탐하다 제이와이제이 잃는다’
한편, 불공정계약 파장 등 그동안 JYJ를 둘러싼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적잖은 관심을 방송에 반영했던 인터넷매체 라디오21의 <이기호의 폴리스코프>는 7월 20일 오후, JYJ 특집방송을 긴급 편성해 팬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소녀시대 탐하다 제이와이제이 잃는다’라는 의미의 ‘소탐제실’이라는 신조어는 이 방송에서 사용했다. 사실 이날 방송을 위해 이 멘트를 특별히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기원 특별방송에서 JYJ의 출연이 갑자기 취소되고, 소녀시대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다룬 기사를 준비하던 중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난 말을 기억해 두었다 사자성어에 빗대 표현했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정작 중요한 것을 잃고 신의를 저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가리킨다’는 의미도 부여했다.
이 신조어는 청취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한동안 포털사이트 ‘검색 자동완성 서비스’가 제공될 정도로 유행을 탔다. 그러나 이날 방송에서 무엇보다 청취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 것은 진행자 이기호 기자의 클로징멘트였다.
“우리 주변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불합리한 구조에 희생당하고 비정상적이고 불공정한 환경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연예인이건 노동자이건 정치인이건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정신입니다. 그것이 보다 나은 우리 사회를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혹시 이 방송을 JYJ 멤버들이 듣고 있다면 ‘여러분,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보고, 듣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의 이 묵묵한 저항을 지지하며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이 장애물이 벽이라면 무너질 것이고, 문이라면 언젠가는 열릴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 더 많이 준비하고 노력해 주십시오.”